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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합니다


I. 공산당 선언의 배경

  • 3. 평생지기 엥갤스를 만나다

    교수의 꿈을 접고 신문편집장이 되다

    마르크스는 에나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본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는 교수가 되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청년 헤겔파를 이끄는 바우어가 대학에서 해직되는 것을 보고 교수의 꿈을 접었다. 마르크스는 급진적 반정부신문에 기고를 시작하여 이를 계기로 그해 10월에 쾰른으로 이주하여 그 신문사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혁명적 민주주의 입장에서 프로이센의 절대주의를 비판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계급, 개인 소유,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농민들의 목재 절도사건’ 이었다. 이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정치경제학도 잘 몰랐기 때문에 보수적인 귀족이 쓴 글에 대해 재치 있는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반성에 이른다. 신문사 편집장으로서 여러 현실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경제학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러는 사이 그는 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그러던 차에 마르크스가 포도 재배업자의 비참한 삶에 대한 비판적인 원고를 싣는 바람에 <라인신문>은 폐간되고 말았다. 당시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프로이센에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편집장직을 사임합니다.’라는 광고문구와 프로메테우스(마르크스)가 독수리(프로이센)에게 괴롭힘 당하는 그림으로 저항했다.

    파리로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이듬해 23살에 아버지 친구의 딸 예니와 결혼하여 좀 더 자유로운 파리로 옮겨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프랑스의 사회주의를 연구했다. 이때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고전경제학자들에 대해 공부하였다. 철학에 경도되었던 마르크스는 점점 현실의 역사와 정치경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무렵 프랑스 급진 사회주의의 태두인 오귀스트 블랑키와 어울렸다.

    평생지기 엥겔스를 만나다

    혁명가로 변신한 마르크스는 파리 한 카페에서 그의 평생지기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났다. 이 무렵 엥겔스는 유물론자, 혁명주의자였으며 노동계급만이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일어서게 되는 계급이라 생각했다. 이때 마르크스와 의기 투합한 엥겔스는 부유한 공장주로서 평생 마르크스의 어려운 재정형편을 뒷받침함으로써 마르크스 사상이 세상의 빛을 보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마르크스는 파리 시절 엥겔스와 함께 오귀스트 블랑키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의인동맹(義人同盟, 독일어: Bund der Gerechten)이라는 비밀결사단체에 가입하는데, 행동주의적, 급진적, 혁명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던 비밀결사체였다.

    엥겔스는 독일 라인 주 바르멘시(오늘의 부페르탈)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을 자신 같은 자본가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엥겔스는 김나지움을 중퇴하고 브레멘 상사에서 일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본가이지만 노동자들의 고통을 보며 울분을 느꼈다.

    그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착취와 법과 결탁한 계급투쟁 탄압으로 고통 받는 현실을 보고 《도이칠란트 통신》에 지배계급을 비판하는 수많은 글을 썼다. 1841년에 엥겔스는 베를린에서 지원병으로 포병연대에 들어가 복무하면서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청강하며 헤겔 좌파가 되었다. 군 복무를 끝마친 그는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영국 노동계급의 비참한 삶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차티스트 운동(영국 의회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민중운동) 관련자들과 연계를 맺고 영국의 출판물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엥겔스의 이러한 현실 비평은 마르크스가 이상적 사회주의를 비롯한,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 조류들을 극복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고유의 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844년 9월 독일로 가던 중 엥겔스는 파리에서 칼 마르크스와 만났다.

    두 사람의 우연한 조우가 역사적 필연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평생을 마르크스와 함께하며 그를 도운다. 물질적 후원과 함께. 마르크스의 사후에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며 마르크스의 유작들을 정리하여 자본론 2, 3권을 출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