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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합니다


전쟁연대표

1950년 ~ 1953년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비극적인 전쟁이다. 전세가 불리했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10월 말경에는 압록강 지역까지 국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3년 1개월간 끌었으며, 1953년 지금의 휴전선을 경계로 휴전이 성립됐다.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 제국 멸망

스키타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오가며 곳곳에 흩어져 살던 여러 유목민들에게 기마전술과 기마문화를 전수했다. 흉노와 고구려 그리고 돌궐과 몽고의 막강한 군사력은 스키타이로 부터 전해받은 기마장비와 기마전술을 발전시킨 결과였다.

한편 BCE 8세기 이전부터 스키타이는 강력한 기병대를 바탕으로 서아시아 일대를 침공하였지만, BCE671년 오리엔트를 통일할 정도로 막강해진 아시리아에 가로막혀 있었다. 얼마 뒤 아시리아가 약화되자, 스키타이는 이를 서아시아로 진출할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곧 아시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신바빌로니아, 이집트, 메디아 그리고 리디아가 다시 독립하고 이들 중 신바빌로니아가 가장 유력한 패권국으로 떠오르면서 서아시아는 새로운 힘의 질서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아시리아는 이제 수도 니네아만이 겨우 남겨진 상태였다. 신바빌로니아가 서아시아를 차지하여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할 것을 두려워 한 스키타이는 BCE 622년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가 니네베를 포위 공격하자, 아시리아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원군을 파견하였다. 스키타이는 이들 연합군을 공격하여 포위를 풀고, 아시리아를 구해낸다. 이때 메디아는 스키타이의 파상 공격으로 거의 패망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BCE 612년 세력을 회복한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는 다시 아시리아를 공격하여 결국 멸망시킨다. 서아시아 패권이 신바빌로니아에게 완전히 기울어지면서 기회를 놓치게 된 스키타이는 서아시아에 대한 야망을 포기해야 했고, 이후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

아시리아는 전차를 비롯해 보병, 궁병을 조화시켰고 특히 막강한 기병대를 갖추었다. 이렇게 최강의 군대를 가진 아시리아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서아시아 일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여러 민족과 왕국들을 복속시킨 최초의 세계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통치방식은 가혹했으며 정복지의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민족과 종교를 말살하는 방식으로 제국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아시리아에 정복된 북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과 혼혈되어 민족성 자체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유다왕국만이 히브리 민족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시리아의 이같은 정책은 피지배 민족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고, 아시리아가 내부분열과 스키타이의 계속된 침공으로 약화되자, 각지의 저항세력은 곧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기원전 1000년 경

철기의 확산

철기 시대(鐵器時代, 기원전 1200년경 ~ 586년경)는 철을 주로 사용하여 도구나 무기를 만들던 시대를 말한다. 고고학에서 선사 시대를 분류하는 세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이다.

일반적으로 철기 시대의 연대와 물품들은 분포된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기원전 12세기 그리스와 고대 중동지역 (메소포타미아 지역), 기원전 11세기 인도, 기원전 8세기(중유럽)와 6세기(남유럽)에 걸친 유럽지역으로부터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로마 제국과 헬레니즘 혹은 북유럽 초기 중세기 즈음에 막을 내린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위키백과)

최초의 철기는 기원전 21세기(기원전 2,000년) 히타이트가 있던 중동의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발견되었으며, 본격적인 중동의 철기시대는 바다 민족이 청동기 시대를 붕괴시킨 후인 기원전 1,200년대이다. 고대 지중해의 무역로가 붕괴되면서 주석의 수입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고, 흔한 금속인 철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직은 청동기의 사용이 더 우세한 시대였다. 이유는 당시는 기술 부족으로 주조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주조철기는 청동기에 비해 딱히 강도에서 유리한 게 없었기 때문이며, 기원전 1세기가 되어서야 철제무기는 청동제 무기를 밀어내게 된다.


기원전 1046년 은나라 멸망

청동기 문명이었던 상나라는 구리 산출지를 따라 여러 곳에 수도를 옮겨 다녔고, 최후에는 은허로 수도를 옮겼다. 이 때문에 은왕조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구리와 주석의 보유량을 회복시키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도시국가 연맹체의 맹주로서 부여받았던 하늘 자손의 권위 역시 추락하였다. 이로인해 연맹의 지배력 역시 급속히 상실하게 되었으며, 결국 서쪽 변방에 있던 주나라 무왕이 은에게서 이탈한 여러 연맹체들을 이끌고, BCE 1046년 은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이를 계기로 청동의 보유량과 종교적 권위에 의존한 은나라의 느슨한 연맹체제가 멸망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무왕은 주왕조를 배신하지 않을 든든한 제후국을 세우게 되었으며, 주나라는 제후국들과 혈연으로 봉신관계를 맺게 된다.

즉,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봉건제도의 유래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1275년 경 이집트-히타이트와의 카데쉬 전투

이집트 중왕국 말기, 이집트가 분열로 약화되자, BCE 1640년 힉소스인들이 전차를 앞세워 침입하였고, 하이집트에 15왕조를 세우고 108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러나 아모세가 힉소스인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하면서 18왕조가 세워지고, 이집트는 신왕국 시대를 맞이한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가 가장 번영했던 시기였는데, 18왕조의 투트모세3세와 19왕조 3대 파라오 람세스2세의 치하에 정복 전쟁을 벌이면서 시리아의 지배권을 놓고 히타이트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

BCE 1275년 카데쉬에서 벌인 대규모 결전에서 이집트가 사실상 패하면서 가나안에서 물러나야 했고, 지배권도 상실하며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기원전 1296년 또는 1280년 이집트는 히타이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는 역사 기술상 최초의 평화조약이라는 성격을 띈다.


기원전 1595년 바빌론 멸망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는 여전히 주변 민족들의 정복욕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메소포타미아를 다시 통일했던 바빌로니아 역시 이러한 도전에 늘 시달려야 했다.

BCE 1595년 결국 강력한 철제무기와 말이 끄는 전차를 가지고 등장한 히타이트에게 정복되고 만다. 히타이트가 국내 문제 때문에 곧 군대를 철수하고 돌아갔지만, 사실상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은 이때에 패망한다.

그리고 영토는 아시리아에게 점령되기 시작한다.


기원전 3500년 경

청동기 시대와 고대국가 탄생

청동기 시대는 돌을 이용한 석기 대신에 청동기가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시대를 말한다.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요하며, 이러한 광물자원의 확보와 불을 이용한 야금법이 주요한 제작 수단이 된다.

청동기의 획득으로 농업 생산이 성장하였지만, 이로 인해 인류는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약탈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만 년 전~5천 년 전

문명의 탄생


350만 년 전

인류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