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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분노, 제안, 그리고 복지주체 형성 - 오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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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분노, 제안, 그리고 복지주체 형성

 

2011. 6. 28

오 건 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1. 왜 지금 ‘정의’를 열망하는가?

 

국민 대다수가 대한민국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도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 태어나서 학원에 쫓기고, 입시에 억눌리고, 대학등록금과 알바에 휘들리고, 그리고 다시 청년백수로 한탄해야 하는 세상. 부모 세대 역시 소수를 제외하고는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희망을 가지기 힘든 세상. 이러한 세상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 된 것이다. 이 문제점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이 부조리한 현실을 답답해할 때,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판되었다. 국민들은 자신의 열망이 ‘이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정의는 여러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고, 또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종의 ‘규칙’(등가교환, 불편부당 등)일 수도 있고, 바람직한 ‘가치’(행복, 이익, 권리 등)일 수도 있다. ‘규칙’으로 접근할 경우 형식적 정의는 확보되지만, 규칙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권력자원 격차가 사전에 존재할 경우 실질적 정의를 확보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며, ‘가치’로 접근할 경우 마이크 센델 교수가 독자들을 곤혹케 만들듯이 정의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2. 시장경제의 ‘등가교환원리’는 부정의(不正義)를 본질로 한다.

 

나는 정의를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가 존중되는 상태’로 이해한다. 이 권리는 정치적 권리일수도 있고, 경제적 권리일수도 있고, 문화적 권리일 수도 있다. 당연히 권리주체가 긴장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다수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중심에 놓여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운용되는 기본원리는 등가교환이다. 양 당사자가 동일한 가치의 물건을 교환하기에 이는 공평한 행위로 간주된다. 하지만 등가교환은 교환 행위자들이 지닌 사회경제적 자원의 격차에 눈 감는다. 이 격차가 사실상 교환에서의 가격을 결정함에도 말이다. 그래서 재벌 회장, 대기업 임원, 전문가 집단들은 자신의 노동력가치를 만들고 재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훨씬 많은 이윤이나 수입을 얻고,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들은 참담한 수준으로 보상받는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이를 운용하는 지배계층은 ‘지나치 격차’가 초래할 체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부정의 상태를 ‘규제’라는 명목으로 관리해 왔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 규제에 대한 동기가 현격히 약해졌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쇠퇴하고 동구 사회주의권은 역사적 실험을 ‘실패’로 선언했다. 이제 일반 국민들이 시장경제 체제를 넘는 대안을 상상하지 못하는 만큼 시장경제 체제의 안정성은 견고해졌고, 이에 따라 탈규제가 심화되고 시장만능주의가 전개되었다. 어느 때보다 ‘부정의’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3. 왜 복지국가인가?: 보편적 생활권을 위한 탈상품화

 

한국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복지’를 이야기하면 ‘비효율’이나 ‘복지병’ 딱지가 따라붙곤 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이 누리길 바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지난 반세기 성장우선주의가 지배했던 대한민국에서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대한민국 민심의 진보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8년 촛불 광장에서 외친 “함께 살자 대한민국”, 작년 지방선거를 강타했던 ‘무상급식’ 등에서 확인되듯이, ‘시장과 경쟁’을 넘어 ‘연대와 공존’ 가치가 확산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기본 특징은 Polanyi, Esping-Andersen이 강조하듯이, ‘탈상품화’로 정의될 수 있다. 탈상품화는 개인이 시장에 대한 의존 없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순수한 시장의 힘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만드는가? 등가교환 원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지는가? 상품으로서의 시민의 지위를 얼마나 축소시키는가?의 문제이다. 

 

탈상품화는 기여와 수혜가 일치하지 않는 ‘부등가교환’인데, 이는, 언듯 생각하면,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등가교환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사회연대적 교환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가 존중되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등가교환의 상품원리에서 가능한 벗어나는 탈상품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지금 과도한 시장만능 경쟁에 노출된 서민들에게 ‘복지’로 나타나고 있다.

 

4. 2만달러 행복의 역설?, 애초 복지국가 건설의 관건은 경제력이 아니라 정치력이다.

 

2만달러에 도달하면 행복지수는 더 높아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실제 서구 복지국가도 대부분 2만달러 수준에서 지금의 복지 수준에 도달했다. 종종 ‘1인당 GDP가 2만달러인 우리나라를 4만달러(OECD 평균) 나라들을 비교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무상의료에 필요한 돈이 없는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작년에 청구받은 의료비가 총 57조원이고(비급여 포함), 이 중 국민건강보험이 지불한 금액은 34조원이다. 그런데 2008년 우리나라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납부한 보험료가 33조원이다. 올해 국민연금이 거둔 연금보험료 수입이 총 26조원에 불과하지만, 국민들이 민간생명보험회사에 낸 보험료 총액이 90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보편복지가 미흡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장복지로 지출되는 비용이 공공복지로 ‘전환’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수행할 사회적 힘이 약한 탓이다. 복지국가!, 이것은 ‘비용 전환’의 문제이고, ‘경제력’이 아니라 ‘정치력’이 관건이다. 

 

5. 정의, 분노, 제안

 

‘공정한 기회, 공정한 시장 경제’라는 ‘미신’은 이제 힘을 잃고 있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시장주의 정의론, 성공 담론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존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이 분노는 기존 질서와 정의에 대한 부정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염원이다. 분노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자동차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단순히 ‘분노’에만 그칠 경우, 미래에 대한 무력감은 다시 부정의 세력의 복귀를 용인할 수 있다. 미래를 건설한 긍정적 제안이 필요하다. 

 

6. 잠정적 유토피아로서 ‘복지국가’

 

현재에 대한 분노를 토대로 삼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제안’을 담은 미래 담론으로 ‘복지국가’에 주목하자. 지금 대한민국 민심에게 복지국가는 일종의 ‘잠정적 유토피아’로 이해된다. ‘잠정적 유토피아’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 에른스트 비그로포르가 창안한 개념인데, 유토피아와 현실 세계를 잇는 ‘정거장’의 위상을 지닌다. 

 

오랫동안 80년대 ‘최대강령’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진보운동에게 잠정적 유토피아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경로로 제공해 준다. 생활고에 지친 대한민국 서민이 겪는 좌절을 정치적 열망으로 이끌 수 있는 복지국가가 지금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이다. 2008년 촛불이 ‘목적지’가 불분명했다면, 지금 민심은 ‘복지국가’라는 구체적 목표를 향하고 있다.

 

7. 복지국가 대중주체 형성

 

복지국가를 건설해 가기 위해서는 대중적 복지주체가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에 대항할 기득세력은 견고한 편인 반면 복지국가 운동은 장애인, 빈민, 환자단체만 외로이 벌여오고 있다. 단지 ‘정치권’에서만 복지국가 논의가 과잉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서구 복지국가 형성과정에서 보듯이, 복지국가는 ‘정치적 프로젝트’이고 이를 추동한 대중적 복지주체가 필요하다. 다음 두가지 과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 보편 복지를 바라는 일반 시민들이 복지운동의 주체가 돼야 한다. 이들이 복지국가 논의에서 ‘관람자(observer)'에서 ’행위자(actor)'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당사자들이 나서는 일은 매우 중요지만 이후 각 부문 당사자들을 하나의 요구로 결집시키는 실행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나는 복지재정 의제를 소재로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와 대기업에게 ‘내라!’는 요구에서 우리가 ‘낼테니 내라!(내자)’ 운동으로 전환하자. 이를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재원마련에 참여해 자긍심을 확보하고 부자들을 압박하는 에너지를 만들어 가면서, 미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대중적 주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일정한 공론화가 이루어지면, 가을부터 ‘복지국가를 위한 내자! 촛불’은 어떨까?

 

둘째, 노동조합이 복지국가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복지국가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복지가 주어지는 기업별체제에 상당히 영향받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복지 체제를 국가복지 체제로 전환해 사회임금을 늘리는 노동운동 활동방향의 전환이 요청된다. 특히 “노동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주장이 노동운동이 복지국가 논쟁에 소극적인 것을 ‘정당화’해주는 논리로 작용해선 곤란하다. 복지와 일자리 모두 중요하다. 어느 하나가 부족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할 뿐이다. 복지를 주창할수록 노동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하고, 노동개혁이 절실한 만큼 복지 확충에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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