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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사람이 사물과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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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 대학 룸메이트가 당신에게 묻는다. 왜 늦게까지 자지 않고 폭주하는 전차의 도덕적 딜레마를 고민하고 있느냐고.

 

 “윤리학 입문 과목의 보고서를 잘 쓰려고.” 당신이 대답한다.

 “왜 잘 써야 하는데?” 룸메이트가 묻는다.

 “학점을 잘 받으려고.”

 “그럼 왜 학점에 신경을 쓰는데?”

 “투자 금융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왜 투자 금융 분야에서 일하려 하지?”

 “헤지펀드 매니저가 되려고.”

 “왜 헤지펀드 매니저가 되려는데?”

 “돈을 많이 벌려고.”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게?”

 “내가 좋아하는 바닷가재를 자주 먹으려고. 어쨌거나 나는 유정적 존재라서 밤늦게까지 폭주하는 전차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거야!”

 

 칸트가 타율적 결정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다. 뭔가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고, 또 다른 뭔가를 위해 저런 행동을 한다.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에 반응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다.

 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이와 정반대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아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 바로 이것이 사람과 사물의 차이점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을 목적으로 취급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전체의 복지를 위한 도구로 보는 공리주의가 옳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덩치 큰 사람을 밀어 떨어뜨려 철로를 막으려는 행위는 그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동이지,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다. 계몽된 공리주의자들(존 스튜어트 밀 등)도 그 남자를 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공리가 줄어드는 부차적 효과(사람들이 더 이상 다리 위에 서 있으려 하지 않는 등)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는 그것이 남자를 밀면 안 되는 적절한 이유는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여전히 희생자가 될 사람을 도구이자 물건,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을 살려 두는 이유는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주저 없이 다리를 건너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의문을 품다보면, 칸트의 엄격한 자유의 개념만큼 엄격한 그의 도덕의 개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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