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WAR.NET


전쟁을 반대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칸트가 지적한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본문

 칸트는 공리주의를 거부했다. 공리주의는 권리 역시 무엇이 최대 행복을 만들어 내는가를 따져 보는 계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권리를 취약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생겨나는 욕구들로부터 도덕 원칙을 끌어내려 함으로써 도덕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그르친다.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열렬히 지지한다 해도, 다수가 특정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도덕은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흥미, 바람, 욕구, 기호 같은 경험적 요인에만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어서 보편적 도덕 원칙(예를 들어 보편적 인권)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칸트가 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 것은 도덕 원칙을 기호나 욕구(행복의 욕구도 마찬가지)를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도덕의 진실을 오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공리주의의 행복 원칙은 “도덕성 확립에 어떤 식으로든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를 선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르며, 이익 추구에 신중하거나 영악하게 만드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2) 도덕을 사람들의 흥미와 기호에만 기준을 둔다면, 도덕의 존엄을 훼손하게 된다.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계산에만 밝은 사람이 되게 한다”.3)

 우리의 바람과 욕구가 도덕의 기준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할까? 한 가지 가능성은 하느님이다. 하지만 그것은 칸트의 대답이 아니다. 그는 비록 기독교인이기는 했지만, 도덕의 기초를 신의 권위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그는 우리가 ‘순수 실천 이성’을 훈련하여 도덕의 최고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에 따르면, 이성으로 도덕법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칸트는,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자율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 있으며, 이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 이 라고 말했을 뿐이다.

 칸트는 이성적 능력이 우리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뜻 인정한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능력도 있다. 그는 우리가 이성적 존재일 뿐 아니라 유정적(sentient) 존재라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유정적 능력’이란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벤담이 옳았지만, 절반만 옳았다. 우리가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벤담은 옳았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그의 주장은 옳지 않 다. 칸트는 이성이야말로, 적어도 때로는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통치할 때,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 조종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능력이 합쳐져 우리는 특별한 존재,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가 된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단지 욕구만 느끼는 동물이 아닌, 그 이상이 된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