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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17) 제9장(第九章) 제가치국(齊家治國)(3)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그것이 있고 난 뒤에야

본문

   堯舜帥天下以仁(요순솔천하이인) 而民從之(이민종지) 

   요순(堯舜)이 천하를 인(仁)으로써 거느리자,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고,

 

   桀紂帥天下以暴(걸주솔천하이폭) 而民從之(이민종지)

   걸주(桀紂)가 천하를 포(暴)로써 거느리자,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다.

 

   其所令(기소령) 反其所好(반기소호) 

   그들이 내리는 명령이,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반대가 되면,

 

   而民不從(이민종부종) 

   백성들은 따르지 않게 된다.

 

   是故君子有諸己(시고군자유제기)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그것이 있고 난 뒤에야, 

 

   而后求諸人(이후구제인)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無諸己而后非諸人(무제기이후비제인) 

   자기에게 그것이 없은 뒤에야 남을 비난할 수 있으니, 

 

   所藏乎身不恕(소장호신불서) 

   제 몸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서(恕)’가 아니면서도,

 

   而能喩諸人者(이능유제인자) 未之有也(미지유야) 

   그것을 능히 남에게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있은 적이 없었다.

 

   故治國在齊其家(고치국재제기가)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바로 잡음에 있다는 것이다.

 

 

 

성왕(聖王)의 상징이라는 요(堯)와순(舜), 그리고 포학(暴虐)의 대명사인 걸(桀)과 주(紂)의 네 군주에 대해서는 이미 이웃님들께서는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요순(堯舜)은 스스로 명덕(明德)을 밝힌 성군(聖君)이고, 걸주(桀紂)는 실덕(失德)한 폭군(暴君)으로 오래도록 유가(儒家)에서 회자(灰炙) 되어 왔거니와, 유교의 정치 이념인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임금의 덕(德)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거듭 강조한 대목이다.

백성들이란 임금의 마음 가짐에 따라서 기울어지게 되므로,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는 마음가짐부터가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학>이 주장하는 요지(要旨)이다. 그래서 "요순(堯舜)이 천하를 인애(仁愛)로써 거느리매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고, 걸주(桀紂)가 천하를 포(暴)로써 거느리매,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다"고 하였다. <논어>안연편(顔淵篇)에서도 공자가 계강자(季康子)에게 말하기를,"선생께서 선(善)하려 한다면 백성들도 선(善)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은 그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라고 하였다. 때문에 임금이 훌륭한 덕(德)을 갖추게되면 백성들이 그를본받아 나라가 잘다스려지고, 임금이 덕(德)을 잃게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랫사람은 웃사람의 하는 일을 본받게 마련인데, 이것을 상행하효(上行下效:윗사람이 행하면 아랫 사람이 본받는다)라고 부른다. 상행하효는 그러나 웃사람의 강압적인 명령(命令)으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예기> 치의편(緇衣篇)에 "아랫 사람이 웃사람을 섬김에는 그 명령하는 바에 따르지 않고, 그 행하는 바에 따른다"고 하였다.  곧 아랫 사람은 항상 웃사람의 실제의 행동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내리는 명령이 그들 자신이 즐겨하는 것과 배치(背馳)되는 것이면 아랫사람들이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역시 <예기>치의편(緇衣篇)에, "웃사람이 물건을 좋아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더 심하게 좋아할 것이다. 그러므로 웃사람은 좋아 하고 싫어 하는 바를 삼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다스리는 자, 자신이 진심으로 우러 나오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는 것이지 스스로는 잔인(殘忍)하고 횡포(橫暴)스런 짓을 즐겨하면서 백성들에게 인애(仁愛)의 일을 하라고 이율배반적인 명령을 마무리 내린다고한들 거기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령 이전에 그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행동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는 좋아하고 싫어하는바를 삼가해야 된다고 했으니, 역시 덕(德)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군자는 자신에게 그것이 있고 난 뒤에야 남에게도 있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여기서 ‘그것’이란 원문(原文)의 유제기이후(有諸己而後)의 제(諸)를 말하는데,이에 대해서 정현(鄭玄)과 주희(朱熹)는 달리 풀이를 하고 있다.  정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인(仁)과 양(讓)이라 했고,주희는 일반적인 선(善)을 가지고있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또 "자신에게 그것이 없고 난 뒤에야 남에게 나무랄 수 있다"는 말에서는, ‘그것’곧 무제기(無諸己)의 제(諸)를 정현(鄭玄)은 자신에게 빈려(貧戾)가 없음을 말한 것으로 보았으나, 주희는 일반적인 악(惡)이 없음을 말한 것으로 보았다. 때문에 여기서는 주희의 풀이를 받아 들인 것이다. 그래서 위 내용을 살펴 보면 군자는 자신에게 선(善)한 것이 있고 난뒤에야 남에게도 선(善)한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악(惡)한 것이 없고 나서야 비로소 남에게 악(惡)한 것을 나무라고 그것을 고쳐 줄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을 하게 된다. <춘추> 번로인의법편(繁露仁義法篇)에도, "대저 내게 그것이 없으면서 남에게 그것을 추구하고 내게 그것이 있으면서 그것을 남에게 비난하는 것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에게 ‘서(恕)’가 없으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임금은 마음으로부터 선정(善政)을 베풀어야만 백성들의 입장에서 정치와 교화를 펴나가는 것이요, 동시에 이러한 것이 바로 서(恕)의 정신(精神)이기 때문이다.

주희는 ‘서(恕)’를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 하였으니, 곧 자신의 경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심으로 자기의 일 처럼 나의 일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일반적 의미의 용서(容恕)의 의미도 서(恕)에서 나온 것이지만, 원래 그 본지(本旨)는 서심(恕心)이었기 때문에 주희의 풀이가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서(恕)의 사상은 유교사상에서 중요한 하나의 줄기이며 맥이라고 할수가 있다. 공자가 증자에게 전한, "일이관지(一以貫之)는 오도(吾道)니라" 라는 말에 증자는 바로 충서(忠恕)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공자는 서(恕)을 일생을 두고 행할 만한 도(道)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논어>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종신(終身)토록 지켜야만 할 일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공자는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바라지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恕)의 내용으로 봐서, 약간 소극적인 면이긴 하지만 ‘자신이 서려고 하는데에 남도 세울 것이요, 자신이 달하려고 하는 데에 남도 달하게 할 것이다"라는 좀 더 적극적인 면도 있다. 또 <맹자>진심장구상편(盡心章句上篇)에서도 "힘써 서(恕)하며 행동하면 인(仁)을 구함에 더가까운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서(恕)의 내용은 매우 깊고도 넓은것이다. 이곳 <대학>의 친민(親民)도 바로 서(恕)의 실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집안에서 부모의 입장 또는 자식의 입장을 생각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입장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치국(治國)이 제가(齊家)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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