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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15) 제9장(第九章) 제가치국(齊家治國)(1)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집안을 다스리는 자가 남을 교화시킬 수 있다

본문

   所謂治國(소위치국) 必先齊其家者(필선제가기자)

   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에 앞서, 반드시 제 집안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其家不可敎(기가불가교) 

   제 집안도 교화시키지지 못하면서, 

 

   而能敎人者無之(이능교인자무지)    

   남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故君子(고군자) 不出家而成敎於國(불출가이성교어국)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루어 낸다.

 

   孝者所以事君也(효자소이사군야) 

   효(孝)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 되고, 

 

   弟者所以事長也(제자소이사장야) 

   제(弟)라는 것은 어른을 섬기는 방법이 되고, 

 

   慈者所以使衆也(자자소이사중야)

   자(慈)라는 것은 백성을 부리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康誥曰(강고왈)

   강고에 말하기를,  

 

   如保赤子(여보적자)

   ‘갓난아기 돌보듯 하라’ 하였다.  

 

   心誠求之(심성구지)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기만 하면, 

 

   雖不中(수부중) 不遠矣(불원의)

   비록 적중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미유학양자이후가자야)

   어린애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갔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집안은 인간 관계의 온상(溫床)이다. 인간 관계는 집안 사람들간의 관계로 부터 시작된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자식을 사랑하며, 형제 간에 우애(友愛)를 지킴으로써 나아가, 모든 인간 관계를 올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소이사장야(弟者所以事長也)에 쓰인 제(弟)는 제(悌)와 통용자로, ‘공경하다’의 뜻으로,효(孝),자(慈), 제(悌)는 본래 집안의 덕(德)이요, 덕은 예나 오늘이나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일의 중추(中樞) 이다. 여기서는 집안의 덕행(德行)이 국가 사회에 있어서 인간 관계를 올바르게 실현시키는 공통된 도덕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에서 존경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족을 교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덕을 갖춘 사람은 집안에서나 집밖에서나 존경받게 마련이어서 원만(圓滿)한 교화를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덕으로써 제 집안을 교화시킬 수 있어야 남들을 교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집안을 교화 시키지도 못하면서 하물며 남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선생님은 어찌하여 정치를 하시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공자는 "서경(書經)에 ‘효도하라, 오직 효도를 하라, 그리고 형제간에 우애를 다하여 정치를함에 베풀라’하였거니와, 이것도 역시 정치이거늘 어찌 따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겠소?"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곧 덕(德)으로써, 집안을 교화 시키는 일이 덕치(德治)를 베푸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룩 한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가(儒家)에서는 효(孝), 제(悌), 자(慈)등 집안의 덕행(德行)을 사회적 국가적으로 확장(擴張)시켜 나라안의 도덕 규범을 올바로 실현 시키고자 하였다. 자식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함은, 백성으로서 임금을 섬기는 도리요,아우로서 형을 받듦은 하급자(下級者)로서 상급자(上級者)를 받드는 도리요,어버이로서 자식을사랑함은 치자(治者)로서 백성을 사랑으로 거느리는 도리라는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증자입사편(曾子立事篇)에, "어버이를 섬김으로써 임금을 섬기고,  형을 섬김으로써 스승과 어른을 섬겨야 한다. 자식을 부리는 것은 신하를 부리는 것과 같고, 아우를 부리는 것은 부하를 부리는 것과같다"고 한 것은 위 내용에 꼭 들어맞는 말이라 하겠다. <서경(書經)> 강고편(康誥篇)에, "병든 이에게 하듯 대하면, 백성들은 모두 허물을 버리고, 갓난 아기를 돌보듯 하면 백성들은 편안히 다스려질 것"이라고 하였다. 갓난아기 돌보듯 한다는 것은 치자(治者)가 백성을 돌보기를 인자한 부모가 강보(襁褓)에 싸인 어린아이를 돌보듯 한다는 말이다. 갓난 아기는 원하는 것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자한 부모가 정성껏 아기의 의중(意中)을 알고자 하면 비록 거기에 적중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엉뚱하게 벗어 나지는 않게 된다. 치자(治者)는 마땅히 인자(仁慈)함의 도리로써, 백성들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내어 정성껏 대처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집안의 효(孝)를 하듯이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실천하게되며, 따라서 나라는 편안히 다스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기르기를 배우고 난뒤에야 시집을 갔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한 말은, 어머니가 자식을 낳고서야 인자함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치자(治者)도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어도 사랑과 정성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저절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기를 기르거나 나라를 다스리거나 그 근본은 방법이아니라 사랑과 정성이라는 것이다. 또 치자(治者)의 사랑과 정성은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그것으로부터 확장(擴張)된다는 것이다. 집안일이나 나라의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대개 사람의 수완(手腕)이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오늘 날의 사고 방식이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연관하여 문제삼고 있는것은 가사(家事)나 국사(國事)의 사(事)가 아니라, 바로 그 이전의 체제(體制)인 인륜(人倫)이요, 수완이나 능력 이전의 바탕이 되는 덕(德)에 있는 것이다.덕치는 유교의 정치이념이고 그것은 덕화(德化)로써 인륜(人倫)을 세우는 일이요, 가정(家庭)이 바로, 그 인륜(人倫)의 온상(溫床)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제가(齊家)와 국치(國治)를 밀접한 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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