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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13) 제7장(第七章) 정심수신(正心修身)(1)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몸을 닦음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본문

   所謂脩身(소위수신) 在正其心者(재정기심자)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身有所忿懥(신유소분치) 則不得其正(즉부득기정) 

   마음에 노여워 하는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有所恐懼(유소공구) 則不得其正(즉부득기정)

   두려워 하는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有所好樂(유소호락) 則不得其正(즉부득기정)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有所憂患(유소우환) 則不得其正(즉부득기정)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곧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心不在焉(심부재언) 視而不見(시이불견)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聽而不聞(청이불문) 食而不知其味(식이부지기미)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나니, 

 

   此謂脩身在正其心(차위수신재정기심)

   이를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노여워 하는바[所忿懥(소분치)], 두려워 하는바[所恐懼(소공구)], 좋아하고 즐기는 바[所好樂(소호락)], 걱정하는바[소우환(所憂患)]가 있으면 그 바름(正)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외부의 사물의 자극에 대하여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반응을하게 마련이다. 이곳에 쓰인 노공락우(怒恐樂憂)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통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러한 감정(感情)이 있으면 바름(正)을 얻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러나 그렇게 문구(文句)의  풀이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글 전체의 뜻을 얻는 방향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유교(儒敎)에서는 심(心)의 본체(本體)를 자극해오는 사물에 대해서 반응이 없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결코 부정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그 반응을 발(發)이라 하며, 그 반응에 의해서 일어 나는 것이 노공락우(怒恐樂憂)따위의 정(情)인 것이다.그래서 정(正)은 이른바 심지체(心之體)에 대한 심지용(心之用), 곧 본체(本體)에 대한 작용이라는 것이다. 주희(朱熹)도 "이 네 가지 노공락우(怒恐樂憂)는 모두가 마음의 작용이어서 사람이라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러나 그중 한가지가 있는데도 살피지 못한다면 욕(欲)이 동(動)하여 정(正)이 이기게 되어 그 작용(作用)의 결과로 그 바름(正)을 잃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중용>에서는 희노애락( 喜怒哀樂)이 발(發)하지않는 상태를 중(中)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발(發)해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하였다.  절도(節度)란 타당성(妥當性)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행위의 정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절도에 맞는다는 것은 지나치거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공락우(怒恐樂憂) 따위의 정(情)이 절도에 맞을 때 그것이 바로 화(和)이다. 여기서도 화(和)를 요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공락우(怒恐樂憂) 따위의 정(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 치거나 치우치면 마음의 바름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온갖 사물(事物)의 이해나 처리가 바로되지 않는 법이니, 그래서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살펴도 보이지 아니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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