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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11) 제6장(第六章) 성의(誠意)(3)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눈과 손가락이 가리키는 삼엄함이여!

본문

   曾子曰(증자왈) 

   증자가 말하였다.

 

   十目所視(십목소시) 十手所指(십수소지) 其嚴乎(기엄호)

   "열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삼엄함이여!"

 

 

 

증자(曾子)는 춘추시대에 노(魯)나라 무성읍(武城邑)에서 살았다고한다. 그는 증점(曾點)의 아들로 16세에 공자의 문도(門徒)가 되었는데, 특히 효행(孝行)이 뛰어 났다. 그가 저술(著述)했다는 <효경(孝經)>은 이른 바, 효(孝)의 이론(理論)을 편 것으로 거기서 그는 효의 시종(始終)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신체의 전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곧 부모의 분신(分身)이라 함부로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단(始端)이요, 몸을 일으켜 도(道)를 실천 하여 이름을 후세에까지 떨침으로써 부모를 영광되게끔 하는 것이 효(孝)의 종국(終局)이라는 것이다. 또 <논어> 태백편(泰伯篇)을 보면, 그가 임종(臨終) 시에 제자들에게 "내 발을 펴고 내 손을 펴라. <시경(詩經)>에, 두려워 하고 조심함이 심연(深淵)에 임하는 것 같고, 엷은 얼음위로 밟고 가는 것 같다 하였다"고 하면서, 그가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신체를 잘 보존하였음을 확인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증자는 효도를 남달리 추구했을 뿐만아니라 <논어> 학이편(學而篇)을 보면, 그가 ‘일일삼성(一日三省)’을 하여 자아(自我)를 성실(誠實)히 힘써 닦았음을 알 수가 있다. 그는 공자가 평(평)했듯이 재질이 노둔(魯鈍)했으나, 공자의 높은 제자들가운데서도 가장 성기의(誠其意)에 힘씀으로써 마침내 도통(道通)하여 공자에게 일관지도(一貫之道)를 이어 받아 3천문도(三千門徒)중에 72현(七十二賢)의 종(宗)이 되었고,  다시 자사(子思)에게 전함으로써, 유학(儒學)의 정통(正統)을 이었다.  원문(原文)의 내용은, 앞의 ‘人之視己(인지시기) 如見其肺肝然(여견기폐간연)’을 부연한 내용이다. 아무리 저혼자만이 아는 내면의 깊은 곳일지라도 그 선(善)과 악(惡)은 이내 훤히 드러나게 마련인데, 그것이 열눈이 둘러서 주시하고, 열 손가락이 둘러서 지적하는 듯 하다는 것이다.  ‘열 눈’과 ‘열 손가락’은 개수(槪數)로서 ‘많음’을 나타내는 ‘중인(衆人)’의 의미이다. 뭇 사람들이 보고 그 잘못을 식별한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알기를 뭇사람들이 둘러서 보듯 아는 것이 더 경외(敬畏)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남이 보지 않는다 든가 하찮은 일이라 여겨 함부로 굴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마음은 뭇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에 놓였다고 생각하고, 성실하게 신중(愼重)을 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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