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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9) 제6장(第六章) 성의(誠意)(1)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성실이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본문

   所謂誠其意者(소위성기의자) 毋自欺也(무자기야) 

   이른 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으로,

 

   如惡惡臭(여오악취) 如好好色(여호호색) 

   마치 나쁜 냄새를 싫어함 과 같으며, 좋은 경색을 좋아함과 같은 것이다. 

 

   此之謂自謙(차지위자겸) 

   이것을 일컬어 스스로 기꺼워 한다고 하는 것이다.

 

   故君子(고군자) 必愼其獨也(필신기독야)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에도 삼가는 것이다.

 

 

 

성의(誠意)는 수신(修身)으로 출발함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요건(要件) 가운데서도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중용>에서도, "성신(誠身) 함에 도(道)가 있으니, 선(善)에 밝지 못하면 정성(情誠)되지 못한다. 성(誠)이란 하늘의 도(道)이고, 정성되게 하는것은 사람의 도(道)이다"라고 하여 ‘성(誠)’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본장(本章)에서는 ‘誠其意(성기의)’ 곧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선(善)과 악(惡)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 본연의 것이냐에 대해서는 각 종교, 또는 철학이 취하는 인간관(人間觀) 혹은 인생관(人生觀)에 따라서 다를수 있다. 유교(儒敎)에서는 선(善)은 천부(天賦)의 본연(本然)이요,악(惡)은 인욕(人欲)이 빚은 현상으로 보고 있다. 여기의 성의(誠意)도 맹자가 발휘한,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싫어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기’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善)을 따르고 악(惡)을 버린다는 뜻이며, 이것이 곧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의(誠意)는  격물(格物)이나, 치지(致知)가 이루어진 토대 위에서 실현해 나가는 단계이다. 때로 선악(善惡)은 어디에도 있으며, 또 그 구분은 어떻게 하는가에 문제가 있으므로이다. 그래서 먼저 사물이 구명(究明)되고 그 이치가 터득됨으로써 선악(善惡)의 윤리적가치에 대한 명석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다음에 실제 자기내부에서 일어나는 뜻과 생각을 근거로 하여 철저히 실현해 가는것이 성의(誠意)이다. 그런데 성의(誠意)의 실현에 있어서는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악(惡)을 싫어하고, 훌륭한 경색(景色)을 좋아하듯, 선(善)을 좋아하며, 자기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그대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훌륭한 경색(景色)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수없이 외부의 형세(形勢)에 따라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자기의 쾌족(快足)을 위해서하는 것이다. 자기쾌족(快足)은 그러나 선악의 호오취사(好惡取捨)에 진실한 지향(志向)을 가진 자기(自己)를 전제로 해야만 얻어 지는 것이다.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거나 진실로 싫어하면서도 남의 이목(耳目)을 위해서, 또는 외부의 형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짐짓 좋아하지 않는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체 하는 것은 위선(僞善)이요, 사악(邪惡)인 것이다. 선악(善惡)에 대한 진실한 지향(志向)을 철저히 지켜 나아가 자기쾌족(自己快足)을 얻음으로써 마침내 마음이 바르게 되고 몸이 닦이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主體的)이며 자기 내면(內面)에 관한 일이다.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그 깊숙한 내면을 조심한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거나 행동으로 옮겨 지기 이전의 뜻과 생각의 첫 움직임은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또 그 움직임에는 이미 선(善), 악(惡), 사(邪), 정(正)의 기미가 개재(介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뜻의 성실함과 불성실 함은, 자신의 깊숙한 곳에 움직이는 기미를 성찰(省察)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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