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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합니다


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7) 제4장(第四章) 본말(本末)(1)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백성들의 뜻을 크게 두려워 하라

본문

   子曰(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聽訟(청송) 吾猶人也(오유인야) 

   "송사(訟事)를 처리하는 일은, 나도 남에게 못지 않지만,

 

   必也使無訟乎(필야사무송호) 

   반드시 송사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한다"

 

   無情者不得盡其辭(무정자부득진기사) 

   진실하지 않은 자가 그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大畏民志(대외민지) 

   백성들의 뜻을 크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此謂知本(차위지본)

   이것을 일컬어 근본을 앎이라 한다.

 

 

 

<논어>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는, "자로(子路)는 응낙한 것을 묵히는 일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또 "한 마디로 송사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유(由: 子路)일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위에 인용된, "송사를 해결하는 일은 나도 남에게 못지는 않으나 반드시 송사와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모든 송사(訟事)를 간단히 해결 하면서도, 원고(原告)와 피고(被告) 쌍방을 함께 승복(承服)시키는 재간이 있었다. 공자는 자로의 재간을 칭찬하면서도 자기의 의도는 더 근본적인 데 있음을 강조하였다. 재판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크건 작건간에 재판할 일거리가 그 사회에서 아직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판을 맡아서 그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는 일은 판단력과 지혜(智慧)만 있으면 언제나 가능한것이지만, 공자 자신도 그만한 일쯤이야 다른 사람들만큼 능히 할 자신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비곡직을  잘 가리고 못 가리는 문제는 지엽적(枝葉的)인 일이요, 애초 백성들의 근본이 그릇되어 많은 송사가 생기도록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아무리 재판을 잘해 보았자 소용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반드시 소송사건 자체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을 다스리고자 한다고 한것이다. 이는 곧 백성들로 하여금 저마다 스스로 선을 향하도록 덕화(德化)시켜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송사가 없는 세상 곧 형벌이 필요없는 세상을 일찌기 ‘형조(刑措)’라고 일컬었다. 백성들이 법을 어기는 일이 없기 때문에 형법이 소용이 없게 되어 내버려 둔다는 뜻이다. <사기(史記)>에 의하면,주대(周代) 성왕(成王)과 강왕(康王) 연대(年代)의 약 40년간이 ‘형조(刑措)’의 시대였다고 한다. 이처럼‘형조(刑措)’시대에 이르려면 다스리는자의 수신(修身)을 바탕으로 한 덕치(德治)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스리는 자가 스스로 이미 명덕(明德)을 밝혀, 백성을 친애(親愛)함으로써 그들을 덕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덕화된 백성 이라면, 다스리는 자의 명명덕(明明德)에 자연히 겁내어 복종한다는 것이요, 그러하니 송사는 처리할것도 없이 스스로 없어 진다는 것이며, 어쩌다 악인(惡人)이 있어도, 뜻이 두려워 함부로 허황된 말을 다하여 무고(誣告)한 옥사(獄事)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근본을 아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다스리는 자는 송사의 처리 이전에 먼저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혀 백성을 친애(親愛)함이 송사 따위가 아예 일어나지 않게되는 근본임을 알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문제의 추구는 그 근본으로부터 착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원문(原文)의 ‘대외민지(大畏民志)’를 정현(鄭玄)이나 ,공영달(孔穎達) 그리고 주희(朱熹)는 모두 앞에서 풀이한 다스리는자가 백성들의 마음과 뜻을 크게 두렵게한 까닭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이를 달리 보는 견해도 있음을 아울러 밝혀 둔다. 곧 무정자(無情者)가 그 거짓 변설(辯舌)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大衆)의 여론이 두렵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훌륭한 덕성을 지닌 군자에게 덕화(德化)된 백성 이라면 변설(辯舌)의 힘으로  무고(誣告)한  옥사(獄事)를 일으키려는 자를 못하게 하고 겁주어 복종케 한다는 것이다. 심지(心志)를 외복(畏服)시킨다는 전자(前者)의 풀이보다 진일보(進一步)한 경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덕화된 백성들의 심지(心志)를 무정자(無情者: 진실하지 않은 자)가 두려워 한다는 후자의 풀이는  감각적으로, 전자(前者)를 따르지 못하는 것 같으며, <중용>에서 "군자는 움직이지 않아도 존경받고, 말하지 않아도 믿어진다"고 하였고, 또 "군자는 상을 주지 않고도 백성들을 권면하고 장려하며, 성내지 않고도 백성들은 도끼보다 더 위엄에 눌린다"고 한 것을 보아도 후자(後者)의 풀이는 섣부른 왜곡인 같아 저항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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