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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大學

제2편 전문(傳文)(5) 제3장(第三章) 지어지선(止於至善)(3)

〈대학〉은 주희(朱熹)가 삼강령(三綱領)이라고한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이라고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간추려진다. 삼강령은 의 목표로서 정치적,사회적,개인적,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고, 팔조목은 삼강령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팔조목은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인 것이다. 곧 격물로 부터 시작하여 치지(致知)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거쳐 수신(修身)에 이르고, 수신을 바탕으로하여, 제가(齊家)하고 치국(治國)하며 평천하(平天下)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표와 방법을 제시한 은, 치지편(致知篇)에서, "초학자가 처음 배울 때에는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이웃님들께서도 대학과 중용에 대하여 올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 받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미루어 오다가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책임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 졸역(拙譯)일지라도 나자신의 배움을 위하여 노력해 보고자 한다.

푸른 대숲 우거졌어라

본문

   詩云(시운)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瞻彼淇澳(첨피기오) 菉竹猗猗(녹죽의의) 

   "저 기수의 굽이진 곳 바라보니, 푸른 대숲 우거졌어라. 

 

   有斐君子(유비군자) 

   의젓하신 군자님이야, 

 

   如切如磋(여절여차) 如琢如磨(여탁여마)

   자르는 듯 다듬는 듯 하시며, 쪼는 듯 가는 듯 하시네.

 

   瑟兮僩兮(슬혜한혜) 赫兮喧兮(혁혜훤혜) 

   점잖고 위엄 있으시며, 훤하고도 뚜렷하심이여! 

 

   有斐君子(유비군자) 終不可喧兮(종불가훤혜)

   의젓하신 군자님을, 내내 잊을 수 없어라"고 하였다.

 

   如切如磋者(여절여차자) 道學也(도학야) 

   자르는 듯 다듬는 듯하다는 것은, 배움을 말함이요, 

 

   如琢如磨者(여탁여마자) 自脩也(자수야) 

   쪼는 듯 가는 듯 하다는 것은, 스스로 닦음이요,

 

   瑟兮僩兮者(슬혜한혜자) 恂慄也(순율야)

   점잖고 위엄이 있다는 것은, 엄하고 빈틈 없음이요,

 

   赫兮喧兮者(혁혜훤혜자) 威儀也(위의야) 

   훤하고도 뚜렷하다는 것은 위의(威儀)요, 

 

   有斐君子(유비군자) 終不可喧兮者(종불가훤혜자) 

   의젓한 군자를, 내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道盛德至善(도덕성지선) 民之不能忘也(민지불능망야)

   성덕과 지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시경(詩經)>위풍(衛風)의 기오편(淇澳篇)은 위(衛)나라의 무공(武公)이 90세가 넘어서 까지 학문(學問)과 덕(德)을 끊임없이 닦아 빛을내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의 덕(德)을 기리며 칭송한 시(詩)이다. 위의내용은 이 시구(詩句)를 인용하여 지어지선(止於至善)하는 군자(君子)란 어떤 것인가를 설명 하고 있는 것이다. 시구(詩句) 다음의 해설 부분은, <이아(爾雅)> 석훈편(釋訓篇)에서도 보이는데, 본래  <시경>의 시(詩)를 풀이했던 글을 <대학>의 작자가 인용을 한 것 같다. 먼저 ‘瞻彼淇澳(첨피기오)菉竹猗猗(녹죽의의)’를, ‘저 기수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숲 우거졌어라’ 하고 풀이한 것에 대해 살펴 보자. 중국의 북부인 기수(淇水) 유역에 대나무 숲이 우거졌으리라고 보지 않는 견해가 있으나, 기록(記錄)에는 그유역에 기원(淇園)이라는 대나무 밭이 있어서 대나무를 산출해 냈으며, <죽보(竹譜)>에, 기원(淇園)은 은대(殷代) 주왕(紂王)의 죽전원(竹箭園)이었다는 까닭으로 앞의 견해는 옳지않다. 녹죽(菉竹)은 <시경>에는 녹죽(綠竹)으로 되어 있어 녹(綠)을 녹색(綠色)의 녹(綠)이 아니라 녹(菉)의 가차자(假借字)로 보고 있으며, <모전(毛傳)>에서는 녹(綠)을 왕추(王芻)라는 일종의 수초(水草)의 일종으로 보고, 죽(竹)을 편죽(扁竹) 또는 편축(扁蓄)이라는 나물의 일종으로 보았다. 그러나 주희(朱熹)는 이처럼 보지않고 녹(菉)을 통록(通綠)이라하여 녹죽(菉竹)을 그대로 녹색(綠色)의 죽(竹)으로 본 것인데, 여기서는 주희의 견해를 쫓아 ‘푸른 대숲’이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 풀이가 있으나 어느 것을 취하든지 전체의 큰 의미에서는 차이가 별로 없다. 다만 ‘푸른 대숲’이라 한 까닭은 대나무가 군자의 기상에 은근히 걸맞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배움을 쌓는 일은 자르는듯 다듬는듯하다고 하였다. 자르고 다듬는 일은 뼈나 뿔 따위를 다루는 일이다. 뼈나 뿔따위는 먼저 연장으로 잘라서 대강의 모양을 갖춘 다음에 그것을 정교(精巧) 하게 다듬어 완전한 모양을 만든다. 배움의 과정에 있어서도 처음에 기초 윤곽을 얻고 나아가 더욱 세밀(細密)하게 추구(追究)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배움을 쌓는 마음 가짐도 자르는듯 다듬는 듯 해야 한다. 흐리터분한 자세로 올바른 학문을 할수가 없는 것이다. 자르는듯 절도가 있고 결단성있게 나아가며, 자기의 배움이 원만하게 빛나도록 정성껏 다듬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닦는 일은 쪼는 듯 가는 듯하다고 하였다. 연장으로 옥석(玉石)을 쪼아 대강의 모양을 잡아놓고, 모래나 돌 따위로 그것을 갈듯이 인격수양의 과정도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점차 완숙(完熟)한 경지(境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학덕을 쌓는 일이 곧 지선(至善)을 얻는 일인데, 그런 과정과 마음 가짐은 자르고 쪼은 다음에, 다듬고 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아 가면 점잖고 위엄(威嚴)이 있게 되며, 그렇게 되면 안으로 엄(儼)하고 빈틈이 없어져 밖으로의 행동이 훤하고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므로, 이것이 곧 위의(威儀)로서 학덕(學德)을 닦음에서 오는 증험(證驗)인 것이다. 이처럼 학문(學問),자수(自修), 순율(恂慄), 위의(威儀), 성덕(盛德)이 지어지선(止於至善)한 군자(君子)야 말로 백성들이 끝내 잊지를 못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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